2025/04 40

논매는 일꾼들, ‘품앗이’로 이어지던 일손

1. 논을 매는 일이란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논매기란, 모내기 후 자란 모 사이의 잡초를 뽑고 논바닥을 다지는 작업이다.겉보기엔 단순히 ‘풀 뽑는 일’처럼 보이지만,사실은 벼의 생장을 좌우하는 중요한 농사 과정 중 하나였다.논매기를 제때 하지 않으면 잡초가 벼보다 먼저 자라고,영양분을 빼앗겨 수확량이 크게 줄어들 수 있었다.그래서 이 작업은 기술과 체력, 타이밍이 모두 필요한 농사의 고비였다.무더운 여름, 발목까지 잠기는 물속에서 허리를 굽힌 채온종일 논바닥을 기는 일은 육체적으로도 매우 고된 일이었다.하지만 이 힘든 일을, 과거 사람들은 서로 도우며 해냈다.그게 바로 ‘품앗이’였다.2. 품앗이는 노동의 교환이자 정서의 연결이었다‘품앗이’는 누군가의 일을 돕는 대신,훗날 내가 일손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

칼 가는 사람의 하루, ‘삶을 날카롭게’ 했던 기술

1. 무딘 도구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직업한때는 집집마다 칼 가는 날이 있었다.부엌칼, 낫, 가위처럼 매일 손에 쥐는 도구들이 점점 무뎌질 때쯤,골목길로 들어서는 칼 가는 사람의 외침이 들려왔다.“칼 갈아요~ 가위도 됩니다~”그 소리는 마치 계절이 바뀌는 신호처럼 들렸다.칼 가는 사람은 리어카나 등짐 하나에 숫돌, 물통, 줄칼을 가득 싣고 다니며삶의 도구들에 다시 날을 세워주는 일을 했다.그는 단순한 수공업자가 아니라,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던 생활 도구의 가치를 되살리는 기술자였다.한 사람의 하루를 매끄럽게 이어주는 작은 도구를,그는 조용한 손놀림으로 되살려냈다.그리고 그 안에는 오랜 경험과 섬세한 손끝이 숨어 있었다.2. 숫돌 위에 흐르던 감각과 숙련의 시간칼을 제대로 간다는 건 단순히 날을 세우는 ..

종이 만드는 한지 장인의 작업 과정

1. 한지는 종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재료’였다요즘 우리가 쓰는 종이는 기계에서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공산품이다.하지만 예전의 종이는 그렇지 않았다.**한지는 나무, 물, 바람, 손… 이 모든 자연과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살아 있는 재료’**였다.한지를 만들던 장인은 단순히 종이를 만든 게 아니라,재료를 길들이고, 계절의 기운을 느끼고, 사람의 온기로 마무리하는 정밀한 공정을 거쳤다.그래서 한지는 쉽게 찢기지 않았고,수백 년이 지나도 색이 바래지 않고 형태가 유지됐다.‘종이’라는 말로는 담을 수 없는,예술과 장인의 감각이 겹겹이 배어든 결과물이 바로 한지였다.2. 닥나무 껍질에서 시작되는 정성의 여정한지를 만드는 첫 걸음은 ‘닥나무’에서 시작된다.한지의 원재료는 닥나무의 껍질인데,이를 벗겨내고..

풍물장수와 유랑 예술인의 삶

1. 길 위에서 예술을 팔던 사람들풍물장수는 단순한 ‘노점상’이 아니었다.그들은 북, 징, 꽹과리 같은 전통 타악기를 들고,때로는 그것을 연주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그 자리에서 물건을 팔거나 공연을 하던 유랑 상인이자 예술인이었다.풍물장수는 단지 물건을 팔기 위해 소리를 낸 것이 아니었다.그 소리는 길을 지나던 이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시장을 찾은 사람들의 기분을 들뜨게 하던 작은 예술 공연이었다.그러니 ‘풍물장수’는 장사꾼이면서 동시에길 위의 연주자, 마을의 리듬을 만들어내던 이방의 예술가였다.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단지 물건만 남는 게 아니라,소리와 흥, 그리고 웃음이 남았다.2. 유랑은 낭만이 아니라 생존이었다풍물장수는 하루에도 몇 리씩 걷고,시장 골목을 돌며 짐을 풀고, 북을 치고,관객이 모..

시계 고치는 사람들, ‘시계장수’의 시대

1. 시계를 고친다는 건 시간을 되돌리는 일이었다시계가 멈춘다는 건 단순히 기계가 멈췄다는 뜻이 아니었다.그건 어떤 사람의 하루가 멈추고, 리듬이 끊겼다는 뜻이었다.그래서 시계 수리공, 또는 ‘시계장수’는단순히 시계를 고치는 기술자가 아니라, 사람의 시간을 되돌려주는 장인으로 여겨졌다.예전에는 집마다 하나쯤 있는 벽시계나 알람시계,그리고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차고 다니던 금속 손목시계가오랜 시간과 추억을 함께 간직한 물건이었기 때문에그 시계가 멈췄을 때는 그냥 버리지 않고 반드시 고치러 갔다.그렇게 사람들은 작은 시계방을 찾아시계를 고치며, 동시에 자신의 시간도 다시 정비했던 것이다.2. 시계장수는 오차 없는 손끝을 가진 기술자였다시계 수리의 세계는 상상보다 훨씬 섬세하고 정밀했다.특히 기계식 시계는 수백..

우산 수리공, 비 오는 날의 히어로

1. 우산이 귀하던 시절, 수리공은 필수였다지금은 편의점에서 몇 천 원이면 새 우산을 살 수 있지만,과거에는 우산 한 자루가 결코 싼 물건이 아니었다.우산은 고급품에 가까웠고, 비가 올 때마다 잘 접어 다니며소중히 다루는 물건이었다.한 번 찢어진 천이나 부러진 살 때문에 버리기보다는수리해서 오래 쓰는 문화가 자연스러웠다.그래서 골목 어귀나 시장 한 켠에는 우산 수리공이 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우산 수리공은 단순히 고장난 우산을 고치는 기술자가 아니었다.그는 비 오는 날 갑자기 우산이 고장 나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에게즉석에서 해결책을 주던 동네의 히어로였다.2. 우산 수리공의 손끝엔 기술과 감각이 있었다우산을 수리한다는 건 단순히 ‘고친다’는 의미 이상이었다.우산 수리공은 천이 찢어진 부분을 교체하거..

댕기장, 여성 장신구를 만들던 직업의 섬세함

1. 댕기란 무엇이고, 왜 중요했을까?댕기는 단순한 머리끈이 아니었다.과거 여성들의 머리는 단정하게 땋아 묶는 것이 예의였고,그 끝을 감싸며 장식의 역할을 하던 것이 바로 ‘댕기’였다.댕기는 여성의 나이, 신분, 혼인 여부에 따라 색과 형태가 달랐으며,여성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이었다.예를 들어, 혼인 전의 처녀는 붉은 색의 홍댕기,혼인한 여인은 청댕기, 상복을 입은 여인은 흰 댕기를 매는 식이었다.이처럼 댕기는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닌,하나의 사회적 신호이자 삶의 단계를 상징하는 전통 장신구였다.그리고 그 댕기를 하나하나 손으로 짜고 수놓고 장식하던 사람이 바로 **‘댕기장’**이었다.2. 댕기장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직조하던 장인이었다댕기장은 비단이나 명주 등의 고급 원단을 사용해 정교한 장신..

짚공예 장인, 짚신 하나에 담긴 정성

1. 짚신은 단순한 신발이 아니었다지금은 전시관이나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짚신이지만,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짚신은 우리 조상들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 도구였다.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금방 젖고 닳아버리는 신발이지만,그래서 오히려 더 자주 만들고, 더 정성스럽게 신었다.짚신은 벼를 수확한 후 남는 짚으로 손수 엮어 만든 수공예품이었고,신는 사람의 발 크기, 생활 환경, 성별에 따라 모양과 방식이 달라졌다.무심코 밟고 다니던 그 짚신 하나에도 한 사람의 손끝과 마음이 오롯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짚공예 장인은 단순한 신발을 만든 게 아니라,한 사람의 일상을 받쳐주는 바닥을 짚으로 엮어낸 장인이었다.2. 짚신을 엮는 기술은 세대를 이어 배워졌다짚신을 만드는 일은 마냥 쉬운 게 아니었다.짚을 잘 말리고,..

나무꾼이 생계를 잇던 방식과 위험한 순간들

1. 나무꾼은 단순히 ‘산에 가는 사람’이 아니었다나무꾼이라고 하면 흔히 옛날 전래동화 속 주인공을 떠올리기 쉽지만,사실 나무꾼은 우리 조상들의 생계를 책임지던 실제 존재였고, 마을의 중요한 노동자였다.그들은 새벽 어스름이 가시기도 전에 산으로 향했고,도끼와 톱, 새끼줄을 메고 험한 길을 걸었다.나무꾼이 했던 일은 단순히 나무를 베는 것 이상이었다.겨울철 땔감용 장작부터 시작해, 집을 짓는 데 쓰일 굵은 목재, 마을의 울타리 재료까지 모든 목재 자원을 책임지는 존재였기 때문이다.도시화되기 전 농촌과 산촌에서는 나무꾼이 없으면 겨울을 나기 힘들었고,그들은 단순히 숲속의 사람을 넘어, 사회의 기반을 지탱하던 현장형 생계 노동자였다.2. 나무를 구하는 일이 곧 생계를 잇는 일이었다나무꾼은 산에서 베어 온 나무..

포목상은 어떤 옷을 팔았을까

1. 포목상, 옷이 아니라 ‘삶’을 팔던 장사꾼포목상이란 말을 들으면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과거 조선시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어느 장터든 반드시 존재하던 대표적인 상인이었다. 포목상은 간단히 말하면 직물(천)을 팔거나 맞춤옷을 주문받아 전달하던 사람이다. 하지만 단순한 천 장수가 아니었다. 포목상은 계절에 어울리는 원단을 고르고, 고객의 연령과 상황에 맞는 옷감을 제안하며, 옷을 지을 재단사와 연결해주는 중개인 역할까지 했다. 그들은 단순히 ‘천을 판다’기보다, 그 사람의 삶과 계절, 품위를 함께 전달하던 문화적 역할자였다. 장날마다 모습을 드러내던 포목상은 마을 어르신들의 취향을 파악하고, 혼례를 앞둔 집안엔 특별한 원단을 추천했다. 그들은 고객의 삶의 순간마다 꼭 필요한 직물과 이야기를 함께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