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을 매는 일이란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논매기란, 모내기 후 자란 모 사이의 잡초를 뽑고 논바닥을 다지는 작업이다.
겉보기엔 단순히 ‘풀 뽑는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벼의 생장을 좌우하는 중요한 농사 과정 중 하나였다.
논매기를 제때 하지 않으면 잡초가 벼보다 먼저 자라고,
영양분을 빼앗겨 수확량이 크게 줄어들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작업은 기술과 체력, 타이밍이 모두 필요한 농사의 고비였다.
무더운 여름, 발목까지 잠기는 물속에서 허리를 굽힌 채
온종일 논바닥을 기는 일은 육체적으로도 매우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이 힘든 일을, 과거 사람들은 서로 도우며 해냈다.
그게 바로 ‘품앗이’였다.
2. 품앗이는 노동의 교환이자 정서의 연결이었다
‘품앗이’는 누군가의 일을 돕는 대신,
훗날 내가 일손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는 전통적인 노동 교환 방식이었다.
논매기철이면 마을마다 서로 날짜를 정하고,
한 집씩 돌아가며 함께 논을 맸다.
아침 일찍 뙤약볕 아래 모여
논으로 들어가기 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을 마친 뒤에는 막걸리 한 잔과 된장찌개 한 솥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 과정엔 돈도 계약서도 없었다.
오직 믿음과 기억, 그리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있었다.
이 품앗이는 단순한 노동 협동을 넘어서,
마을 공동체를 지탱하던 가장 인간적인 방식의 협력 시스템이었다.
3. 논매는 일꾼들의 하루엔 손발만큼 마음도 움직였다
논매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로 움직였지만,
부족한 일손은 이웃, 친척, 심지어 마을 외 사람까지 불러 함께했다.
서로의 일터를 오가며 손을 빌려주는 일은
그 자체로 관계와 정을 나누는 과정이었다.
특히 논매기는 단순히 노동만 하는 시간이 아니라,
허리를 굽히며 나누는 말, 물속에서 주고받는 농담,
논두렁 위에서 잠시 쉬며 나누는 고요한 교감이 깃든 시간이기도 했다.
일이 끝나면 주인은 손수 만든 음식을 차려 대접하고,
사람들은 고된 하루를 위로받으며 마을길을 함께 걸어갔다.
그 하루는 단순히 풀을 뽑은 시간이 아니라,
사람을 다시 이어 붙이는 시간이기도 했다.
4. 품앗이 문화가 사라지고, 함께 일하던 마음도 멀어졌다
지금은 기계가 논을 매고,
사람 손이 필요한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꾼을 고용하는 방식도 모두 돈으로 바뀌었고,
품앗이는 거의 사라진 단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그 시절의 논매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엮이던 마을의 심장 같은 시간이었단 사실이다.
서로의 손이 닿던 그 물속에서,
사람들은 일도 나누고, 마음도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했다.
형 블로그에서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는 건,
단순히 ‘옛날엔 그랬다’가 아니라
함께 사는 방법, 서로 도와 일하던 품앗이의 철학을 되살리는 일이야.
논을 매던 손끝에서 피어난 건 벼만이 아니었다.
그건 곧 사람 사이의 정서적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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