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 40

행상인의 말솜씨, 상품보다 이야기

1. 행상은 물건보다 ‘사람을 파는 일’이었다예전 시골 마을 골목에 낯선 이가 나타나면먼저 귀를 기울였다.“예에 빗 있어요, 참빗, 날이 고운 새 참빗 나왔어요!”행상인의 외침은 단지 광고가 아니라,마을을 깨우는 음악이고, 사람의 관심을 끄는 한 편의 연극이었다.그들이 가져온 물건은 작고 소박했지만,그 물건을 파는 방식은 크고 풍성한 말솜씨로 이루어졌다.행상인은 말로 웃음을 주고, 말로 신뢰를 만들고, 말로 거래를 성사시키던말의 기술자이자, 감정의 소매상이었다.물건이 뛰어나지 않아도그 사람이 하는 말이 정겹고 입담이 좋으면마을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2. 말은 단지 상품 설명이 아니라, 삶의 경험을 섞은 기술이었다행상인은 단순히 제품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다.그는 말 속에 자기 삶의 일부를 담았다...

약초꾼의 하루, 지식과 자연의 연결

1. 약초꾼은 단순히 약초를 캐는 사람이 아니었다약초꾼은 단지 산에서 풀을 캐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는 자연을 해석하고, 사람의 몸을 이해하며,두 생명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지식자이자 감각의 장인이었다.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약초꾼의 역할은의술을 직접 행하지 않더라도,의술의 기반이 되는 재료를 책임지고,치유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존재였다.사람들은 그를 의사라고 부르지 않았지만,병든 가족이 생기면 먼저 약초꾼을 떠올렸다.왜냐하면 그는 **‘산을 다녀온 사람’이 아니라‘자연과 대화하고 돌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2. 약초꾼의 하루는 이른 새벽, 침묵 속에서 시작됐다약초꾼은 새벽이 오기도 전에 짐을 꾸렸다.소나무 껍질로 만든 지팡이, 가죽끈을 맨 배낭,그리고 예리하지만 다치지 않게 가공한 작은 ..

서당 훈장, 글만 가르쳤을까?

1. 서당은 단순한 글방이 아니라 마을의 ‘작은 학교’였다조선 시대 서당은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곳이었다.하지만 그 본질은 단지 한문을 익히는 공간이 아니었다.서당은 마을 전체가 아이를 맡기는 곳이었고,훈장은 단순한 교사가 아닌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했다.서당에 모인 아이들은 서당글방에서 천자문, 동몽선습, 소학 등을 배웠지만그보다 먼저 배워야 했던 것은 예의, 인사, 질서와 같은 기본적인 인간됨이었다.“선생님께 큰절을 드리고 나서야 수업이 시작됐다”는 말은훈장이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삶의 태도’를 가르치던 존재였다는 걸 보여준다.2. 훈장은 글씨보다 ‘사람’을 가르쳤다서당 훈장은 아이들의 글 공부를 지도했지만그 과정은 외워서 성적을 내는 오늘날의 학습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훈장은 천..

떡메치기 장인의 리듬과 기술

1. 떡메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마을을 깨우는 북이었다예전에는 중요한 날마다 떡을 쳤다.설날, 백일, 돌잔치, 제사, 결혼, 입학…모든 시작과 기념엔 언제나 찰진 떡이 있었고,그 떡을 완성하는 마지막 순간엔 ‘떡메’가 있었다.떡메치는 소리는 단순한 작업음이 아니라사람들에게 “이 집에 좋은 일이 생겼다”는 걸 알리는 신호였고,그걸 다루는 장인은 마을의 중심에서 ‘기쁨의 박자’를 짜내던 사람이었다.사람들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어린아이들은 그 리듬에 맞춰 발을 구르며 웃었다.떡메 장인은 소리를 치는 게 아니라,삶의 기운을 두드리는 기술자였다.2. 떡메치기는 단순한 힘이 아니라 정교한 리듬이었다떡메를 든다고 누구나 떡을 잘 칠 수 있는 건 아니다.쪄낸 찰떡을 메 위에 올리고,적당한 온도와 점도가 유지될 ..

베짜기 여인의 하루

1. 천은 사서 쓰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짜는 것이었다지금은 천을 사는 일이 너무나 당연하지만,예전에는 옷 한 벌을 마련하기 위해선먼저 실을 뽑고, 베틀에 앉아 천을 짜야 했다.그 중심에 있던 존재가 바로 베짜기 여인이다.그녀들은 집 안 깊숙한 곳, 창 너머 햇살이 드는 자리에 앉아한 올 한 올 실을 엮으며 가족의 옷감을 만들었다.이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가족을 입히는 일, 계절을 준비하는 일,그리고 가난 속에서도 품격을 지키는 여인의 손끝 미학이었다.천은 그냥 입는 게 아니었다.어머니의 하루, 아내의 마음, 딸의 손끝이 짜낸 시간의 직물이었다.2. 베짜기는 기술이자 인내, 그리고 삶의 리듬이었다베짜기는 생각보다 복잡한 과정이다.먼저 삼이나 목화, 명주에서 실을 뽑고,날실과 씨실을 베틀에 맞춰 배치해..

복주머니 만드는 사람들, 새해 준비 전문가

1. 복은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었다복주머니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다.우리 조상들에게 복주머니는**마음을 담아 복을 실체화한 ‘손에 쥐는 기도’**였다.설날이나 정초가 되면 아이들의 한복 허리춤에 복주머니를 달아주었고,그 안엔 조용히 오곡, 감초, 향, 글귀, 작은 엽전을 넣었다.그건 단지 액세서리가 아니라아이에게 건강과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정성과 기원이었다.그리고 그런 복주머니를 정성껏 만들던 이들이 있었다.한 땀 한 땀 바느질로 복을 짓고,색과 문양, 천의 질감까지 고려해한 해의 운을 설계하던 ‘새해 준비 전문가’, 복주머니 장인이다. 2. 복주머니 제작은 색과 의미, 재료의 조화를 읽는 작업이었다복주머니는 단순히 예쁜 천으로 만드는 게 아니었다.재료부터 철저히 ‘복이 들어올..

화장하는 여인, 조선의 화장 기술자

1. 조선의 화장은 꾸밈이 아니라 ‘예의’였다오늘날 화장은 개성을 표현하고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도구지만,조선시대의 화장은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그 시대의 화장은 **자신을 단정히 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표현하는 ‘예의의 연장선’**이었다.결혼식, 제례, 궁중행사, 초상화 촬영 등공적인 자리일수록 여성은 반드시 절제된 화장으로 얼굴을 정돈해야 했다.화장은 얼굴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자연스러움 속에서 ‘격’을 더하는 작업이었다.그리고 그런 화장의 완성 뒤에는‘화장 기술자’라 불릴 만한 장인들의 손길이 있었다.그들은 재료를 만들고, 붓을 다루고, 얼굴을 읽는 기술자였고,자연과 사람의 경계를 조율하며 조용히 미를 완성했다.2. 자연에서 얻은 재료, 손끝으로 다듬은 미조선의 화장에는 모든 재료가 자연에서 ..

섬유 염색 장인, 오방색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1. 색을 입히는 일은 단순한 미적 작업이 아니었다전통 염색은 단순히 ‘예쁜 색’을 내는 일이 아니었다.한국의 전통색은 자연과 철학, 기운과 질서에 근거한 상징의 결과물이었다.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오방색(五方色) —동쪽의 청(靑), 서쪽의 백(白), 남쪽의 적(赤), 북쪽의 흑(黑),그리고 중앙의 황(黃)으로 구성된 다섯 가지 색이다.이 색은 단순히 방향만 나타내는 게 아니라우주의 흐름, 인간의 몸, 계절의 변화, 음양오행까지 반영한 색의 체계였다.그리고 이 색들을 천 위에 입히던 이들이 바로염색 장인, 그중에서도 천연 염색을 수공으로 구현하던 전통의 기술자였다.그들이 다룬 건 단순한 천이 아니라,자연의 기운을 담은 색 그 자체였다. 2. 염색 장인은 색을 빚는 조용한 화학자였다오방색을 만들기 위해..

초장수, 손으로 만든 촛불의 의미

1. 불빛 하나에 담긴 정성과 마음의 무게전기가 없던 시절, 어둠을 밀어내는 유일한 빛은 촛불이었다.그리고 그 촛불 하나에 집안의 기도, 제사의 시작,글을 쓰던 선비의 사유, 병든 이를 위한 간호까지 담겨 있었다.단순히 공간을 밝히는 도구가 아니라,사람들의 시간과 마음을 지켜주는 조용한 동반자였던 것이다.그 촛불을 손수 만들던 이들이 있었으니,바로 ‘초장수’, 전통 촛불 장인이었다.그들은 단지 불붙는 초를 만드는 게 아니라,어둠 속에 의미를 밝히는 기술자였고,그 불빛엔 말 없는 위로와 기원이 함께 타올랐다.2. 초장수는 ‘불의 성질’을 다룬 장인이었다전통 초는 밀랍이나 소의 기름, 들기름, 백납 같은 재료로 만들었다.특히 왕실이나 사찰, 큰 집안에서는 향기와 연소 시간까지 정밀하게 고려된 촛불이 필요했다..

민속놀이 제작자, 윷과 팽이의 장인

1. 놀이는 문화였고, 그 문화를 만든 장인이 있었다윷이나 팽이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었다.그것은 마을을 하나로 묶고, 명절을 축제처럼 만들며,세대 간의 경계를 허물고 모두가 함께 웃게 만든 민속문화의 중심이었다.윷을 던지며 팀을 나누고, 팽이를 돌리며 겨울을 나던 시간은단순한 오락이 아닌 공동체적 감정의 공유였다.그리고 그 놀이를 가능하게 만든 사람들이 있었다.바로 민속놀이 제작자들,즉 윷 장인, 팽이 장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그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어른들의 승부욕 사이에 자리한 기술자였다.단순히 나무를 깎는 게 아니라,사람들의 흥과 놀이를 설계한 숨은 장인들이었다.2. 윷 장인은 단순한 나무 깎는 기술자가 아니었다윷을 만드는 일은 단순히 네 개의 나무막대를 깎는 작업이 아니었다.윷 장인은 나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