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옛 직업

서당 훈장, 글만 가르쳤을까?

info-world8 2025. 4. 29. 10:49

1. 서당은 단순한 글방이 아니라 마을의 ‘작은 학교’였다

조선 시대 서당은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 본질은 단지 한문을 익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서당은 마을 전체가 아이를 맡기는 곳이었고,
훈장은 단순한 교사가 아닌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했다.

서당에 모인 아이들은 서당글방에서 천자문, 동몽선습, 소학 등을 배웠지만
그보다 먼저 배워야 했던 것은 예의, 인사, 질서와 같은 기본적인 인간됨이었다.
“선생님께 큰절을 드리고 나서야 수업이 시작됐다”는 말은
훈장이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가르치던 존재였다는 걸 보여준다.

서당 훈장, 글만 가르쳤을까?

2. 훈장은 글씨보다 ‘사람’을 가르쳤다

서당 훈장은 아이들의 글 공부를 지도했지만
그 과정은 외워서 성적을 내는 오늘날의 학습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훈장은 천자문을 하나 외우게 하기 위해
그 글자가 담고 있는 세상의 이치, 부모를 섬기는 도리, 친구 사이의 믿음,
그리고 마을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함께 설명했다.

글 하나를 익힐 때마다 “왜 이 말을 외우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함께 나누었고,
그렇게 해서 아이들은 글자와 동시에 ‘사람의 도리’를 배워갔다.
때로는 훈장이 직접 시골길을 걸으며 아이들과 들풀을 관찰하고
그 속에서 자연의 이치, 인간의 겸손함을 이야기해주는 시간도 있었다.
즉, 훈장은 책상 앞에만 앉은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과 사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손수 가르치던 현장형 스승이었다.

3. 서당 훈장은 마을의 상담사이자 중재자였다

서당이 운영되던 시절, 훈장은 마을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어른으로 통했다.
아이들을 가르칠 뿐 아니라,
어른들의 분쟁을 중재하거나 가정 문제를 조용히 들어주는 역할도 종종 맡았다.
특히 글을 읽지 못하던 주민들은
편지를 읽어달라고 하거나, 고소장을 쓰는 법을 묻는 일도 훈장에게 부탁했다.
어려운 한자 문서를 해석해주고,
경전 속 문장을 인용해 싸움을 조용히 풀어주던 훈장의 모습은
지식인의 겸손함과 마을의 질서를 동시에 상징했다.
누구보다 차분하게,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말을 전달했던 그들은
글을 넘어 사람 사이의 말까지 조율하는 중간자였다.

4. 훈장이 사라지며, 마을의 중심도 함께 흔들렸다

지금은 서당이 거의 사라졌고,
훈장이란 말도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가 됐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훈장이라는 직업이 아니라, 그들이 감당했던 역할과 철학이다.
지식을 머리에만 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가르치고, 마음으로 전하고, 사람을 키우던 교육의 본질이 훈장 안에 있었다.
형 블로그에서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는 건
단순히 “서당은 이런 곳이었다”는 기록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놓치고 있는 진짜 ‘사람 중심의 교육’을 복원하는 일이다.
글만 잘 읽는 아이가 아니라,
인사 잘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친구를 아끼는 아이가 되게 했던 서당 훈장의 방식
오늘날에도 분명한 울림이 있다.
책 속의 문장을 삶 속의 실천으로 바꾸던 그 손길,
그게 진짜 훈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