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옛 직업

베짜기 여인의 하루

info-world8 2025. 4. 27. 09:09

1. 천은 사서 쓰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짜는 것이었다

지금은 천을 사는 일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예전에는 옷 한 벌을 마련하기 위해선
먼저 실을 뽑고, 베틀에 앉아 천을 짜야 했다.
그 중심에 있던 존재가 바로 베짜기 여인이다.
그녀들은 집 안 깊숙한 곳, 창 너머 햇살이 드는 자리에 앉아
한 올 한 올 실을 엮으며 가족의 옷감을 만들었다.
이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가족을 입히는 일, 계절을 준비하는 일,
그리고 가난 속에서도 품격을 지키는 여인의 손끝 미학
이었다.
천은 그냥 입는 게 아니었다.
어머니의 하루, 아내의 마음, 딸의 손끝이 짜낸 시간의 직물이었다.

베짜기 여인의 하루

2. 베짜기는 기술이자 인내, 그리고 삶의 리듬이었다

베짜기는 생각보다 복잡한 과정이다.
먼저 삼이나 목화, 명주에서 실을 뽑고,
날실과 씨실을 베틀에 맞춰 배치해야 한다.
그리고 페달을 밟고, 북을 손으로 밀고 당기며
정해진 간격으로 실을 엮어나가야만 고르고 단단한 천이 완성된다.
이 모든 과정은 기계가 아닌 몸의 리듬으로 조절된다.
조금만 힘이 세도 실이 끊기고,
속도가 빠르면 무늬가 엉키고,
집중을 놓치면 천이 울었다.
그래서 베짜기 여인은 하루 종일 조용히,
페달 소리와 북소리만 울리는 공간 속에서 살아갔다.

그 소리는 마치 집 안 깊숙이 퍼지는
여인의 숨결 같았다.

3. 천 속에는 가족의 사계절이 들어 있었다

베짜기 여인이 짠 천은 단지 입는 용도가 아니었다.
겨울엔 솜을 넣어 이불을 만들고,
여름엔 모시를 엮어 몸을 시원하게 했다.

아이의 돌상에 깔 천,
남편의 여름 저고리,
며느리로 갈 딸을 위한 치마감,
이 모든 것을 직접 짜야만 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천을 짜는 동안 여인의 마음속엔
어떤 색이 어울릴까, 얼마나 짜야 계절을 버틸 수 있을까,
이 옷을 입는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천을 짜는 일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다.
사람을 생각하며 짜는 일,
정성과 마음을 짜넣는 작업
이었다.

4. 베짜기 여인이 사라지며, 옷에 담긴 마음도 흐려졌다

지금은 천을 짜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옷이 넘쳐나고,
손으로 짠 천은 희귀하고 비싸기만 하다.
그런 시대 속에서 우리는
옷 한 벌에 담긴 시간과 정성을 잊고 살아간다.
형 블로그에서 이 이야기를 복원하는 건
단지 옛 기술을 소개하려는 게 아니다.
한 여인의 하루를 통해,
손의 기술이 어떻게 가족을 감싸고,
어떻게 삶의 무늬를 만들어냈는지를 되새기는 작업
이다.
한 줄의 실도 허투루 엮지 않았던 그 손끝의 마음이
지금 우리에게 다시 필요한 이유다.
천은 다시 짜지 않더라도,
그 마음은 오늘도 우리가 입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