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옛 직업

빗장수의 역할과 빗의 의미

info-world8 2025. 4. 20. 08:11

1. 빗장수는 단순한 잡화상이 아니었다

지금은 빗이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상 소품이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빗은 누군가가 직접 만들고, 손으로 깎아야 했던 귀한 물건이었다. 옛날에는 시장이나 잡화점이 잘 없었기 때문에, 빗을 사고 싶으면 ‘빗장수’를 기다려야 했다. 빗장수는 손수 만든 나무빗이나 뿔빗, 대나무빗 등을 등에 지고 마을을 돌며 판매하던 이동 상인이었다. 그들은 보통 봄, 가을처럼 머리 손질이 많아지는 계절에 자주 마을에 나타났고, 방문 판매를 하며 집집마다 돌아다녔다. 아이들은 예쁜 빗을 사고 싶어 문밖으로 달려나오고, 어른들은 오래된 빗을 갈아치우며 새것을 맞이했다. 빗장수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장사꾼이 아니라, 사람들의 외모 관리와 정성을 돕는 작은 장인이자 문화 전달자였다.

빗장수의 역할과 빗의 의미

2. 빗에는 정성과 의미가 담겨 있었다

예전의 빗은 그저 머리를 다듬는 도구가 아니었다. 빗은 단정함의 상징이자, 정리된 삶의 태도를 나타내는 물건이었다. 여인들은 아침마다 빗질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고, 어르신들은 빗으로 머리를 빗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특히 뿔빗이나 나무빗처럼 정성 들여 만든 빗은 머릿결을 다듬는 동시에 정서적 안정감도 주는 존재였다. 선물용으로도 많이 쓰였는데, 한지에 싸서 ‘좋은 머리결을 빌어요’라는 의미로 빗을 선물하기도 했다. 혼례 때 신부의 머리를 빗는 ‘가채 빗질’은 단순한 준비가 아닌 의례의 일부이자 축복의 행위였다. 그래서 빗을 파는 빗장수는 단순한 판매자가 아닌, 삶의 질서를 전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빗장수의 장사는 정성과 기술로 이어졌다

빗장수들이 파는 빗은 대부분 수공예로 만들어진 고급 제품이었다. 그들은 지역의 장인에게서 직접 빗을 받아오거나, 아예 자신이 깎고 다듬은 빗을 판매하기도 했다. 나무의 결을 살리고, 손에 잘 맞게 곡선을 깎아내며, 머리에 닿았을 때 자극 없이 부드럽게 쓸리도록 설계했다. 특히 뿔로 만든 빗은 정전기가 나지 않고 머릿결을 매끄럽게 해주는 고급품으로 여겨졌다. 빗장수는 제품 설명도 구체적이었다. “이건 감나무로 만든 빗이니까 정전기가 안 나요.” “이 빗은 결이 곱고 잘 부러지지 않아요.” 이런 식으로 빗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내며 손님과 대화를 이어갔다. 때로는 오래된 빗을 수리하거나 손잡이를 다시 달아주는 서비스를 해주기도 했다. 그들의 장사는 단순한 판매를 넘어서, 고객의 삶에 스며든 정성의 유통이었다.

4. 빗장수는 왜 사라졌을까?

빗장수가 사라진 이유는 결국 ‘공장제’와 ‘대량 생산’ 때문이다. 플라스틱 빗이 흔해지고, 1,000원짜리 빗도 흔하게 팔리는 시대가 되면서, 정성을 들여 만든 빗의 가치는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밀려났다. 빗의 의미도 단순한 도구로 축소되었고, 머리를 빗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습관으로만 남게 되었다. 지금은 미용실이나 대형마트에서 쉽게 빗을 고를 수 있고, 모양도 다양하지만, 그 안에는 더 이상 빗을 만든 사람의 손끝이나, 그것을 팔던 이의 온기가 담기지 않는다. 빗장수는 사라졌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전해주던 ‘삶을 다듬는 문화’다. 단순한 머리 손질이 아니라, 하루를 정리하고 자신을 돌보는 마음. 빗은 지금도 우리 곁에 있지만, 그 빗을 고르고 팔던 빗장수의 손길은 이제 형의 블로그 같은 공간에서만 다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