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음이 귀하던 시절, 얼음장수의 등장
지금이야 냉장고 문만 열면 시원한 얼음을 꺼낼 수 있지만, 불과 50~60년 전까지만 해도 얼음은 여름철에만 누릴 수 있는 귀한 사치였다. 냉장고가 대중화되기 전, 얼음은 ‘살 수 있는 사람만 살 수 있는 계절의 선물’이었다. 이 시절, 여름을 책임진 사람이 바로 얼음장수였다. 얼음장수는 두꺼운 얼음 덩어리를 가마니나 톱밥으로 싸서 수레나 리어카에 싣고 다니며 판매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얼음 나왔어요~” 하고 외치는 소리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곤 했다. 얼음장수는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 무더운 여름날 사람들에게 시원한 위안을 나누어 주던 존재였다. 어쩌면 그는 여름을 팔고, 시원함을 배달하던 계절의 사자였는지도 모른다.
2. 얼음 한 덩어리로 이어지던 가족의 하루
얼음장수가 도착한 날은 마치 축제 같았다. 집에서는 큰 대접이나 바가지를 꺼내놓고 얼음을 기다렸고, 아이들은 미리 긴 막대기나 쇠숟가락을 챙겨 들었다. 얼음장수는 두꺼운 얼음 덩어리를 망치로 ‘쾅쾅’ 깨트리며 손님이 원하는 만큼 잘라서 팔았다. 어떤 집은 50원어치, 어떤 집은 100원어치씩 샀는데, 그 얼음 한 덩이는 가족 모두의 여름을 책임졌다. 엄마는 그 얼음으로 보리차를 시원하게 식혀 아이들에게 나눠주었고, 아버지는 땀 흘리고 돌아온 저녁에 찬물 한 잔을 얼음과 함께 마시며 더위를 식혔다. 아이들은 얼음 조각을 손에 들고 혀로 핥으며 놀았고, 가끔은 얼음을 입에 오래 물고 있다가 이가 시리다고 울기도 했다. 얼음 하나로 온 가족이 여름을 함께 느끼고, 나누고, 시원함을 공유했다.
3. 얼음장수의 하루는 쉽지 않았다
얼음장수의 하루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됐다. 새벽같이 얼음 공장이나 얼음 창고에 가서 커다란 얼음 덩어리를 구입하고, 톱밥과 가마니로 꼼꼼하게 싸서 녹지 않도록 준비한 후 수레에 실었다. 더운 날일수록 얼음이 빨리 녹기 때문에, 서둘러 마을을 돌며 장사를 해야 했다. 가끔은 얼음이 덜 녹게 하려고 수건이나 천으로 덮고, 수레를 그늘에 잠시 세우기도 했다. 무게도 무거웠고, 얼음이 녹아 생긴 물이 옷을 적시기 일쑤였다. 여름 한복판에서 시원함을 전하지만, 그 안에는 땀과 노동, 세심함이 녹아 있던 직업이었다. 아이들은 얼음장수를 기다렸지만, 얼음장수는 시간을 다투며, 체력을 쏟아가며 여름을 달리고 있었다. 그의 수레는 얼음만 실은 게 아니라, 사람들의 여름을 짊어진 이동식 냉장고였다.
4. 얼음장수는 사라졌지만, 그 시원함은 남아 있다
오늘날에는 얼음장수를 볼 수 없다. 냉장고의 보급과 함께 얼음은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고, 더 이상 누군가가 가져다줘야 하는 귀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얼음장수는 단순히 물리적인 냉기를 파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무더운 여름날 아이들의 웃음을 만들어주고, 어른들의 목을 축이게 하며, 마을에 ‘시원함’이라는 감정을 전하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그 존재가 사라졌지만, 얼음장수가 주던 정서와 기대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아이스크림 트럭 소리에 아이들이 뛰어나가는 모습이나,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얼음을 꺼내 마시는 순간 속에도 어쩌면 그 얼음장수의 마음이 조용히 스며들어 있을지 모른다. 그는 여름을 판 사람이 아니라, 여름을 선물했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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