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옛 직업

엿장수는 왜 북을 쳤을까?

info-world8 2025. 4. 19. 17:08

1. 엿장수는 왜 항상 북을 두드렸을까?

엿장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단연 **‘북을 두드리는 모습’**이다. 아이들에게는 소리만 들어도 침이 고이던 그 북소리는, 단순한 판매 알림을 넘어서 거리 전체를 들썩이게 하던 일상의 알람이었다. 엿장수는 왜 북을 쳤을까?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요즘처럼 SNS나 전단지가 없던 시절, 엿장수는 자신이 도착했음을 북소리로 알려야 했다. 하지만 북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북의 박자와 리듬, 소리의 크기는 ‘기술’이었다. 엿장수마다 고유의 박자를 가지고 있었고, 단골 손님은 그 소리만 듣고도 “아, ○○ 엿장수가 왔구나” 하고 알아챘다. 북소리는 판매 알림이자, 브랜드이자, 지역사회를 잇는 리듬이었다.

엿장수는 왜 북을 쳤을까?

2. 엿은 단순한 간식이 아닌 삶의 일부였다

지금은 마트 한쪽에서 조용히 팔리는 엿이지만, 과거엔 엿이 **단순한 간식을 넘는 ‘문화적 음식’**이었다. 엿은 잔칫날 빠지지 않고 등장했고, 시험을 앞둔 자녀에게 ‘붙으라’는 의미로 선물되기도 했다. 찹쌀이나 조청으로 만든 엿은 설탕이 귀하던 시절 최고의 단맛이었고, 몸이 약한 사람에게도 보양식처럼 여겨졌다. 특히 농한기에는 집에서 엿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기도 했는데, 이때 쓰이는 ‘엿판’과 ‘엿칼’도 나름의 전통 공구였다. 엿은 맛보다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정성이 더 크던 음식이었고, 아이들은 단순히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엿장수 아저씨’를 만나고 싶어서 밖으로 뛰어나오기도 했다. 엿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역할을 했다.

3. 엿장수는 상인이자 이야기꾼이었다

엿장수는 단지 엿만 파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소문을 전하고, 소식을 퍼뜨리는 구전 미디어의 역할도 했다. 특히 북소리 뒤에 따라오는 그의 입담은 사람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 엿은 말이죠~ 지난번 대구 장날에 아주 인기 폭발이었어요~” 같은 말은 실제보다 더 달게 들렸다. 엿을 팔기 위해 과장도 섞었고, 농담과 노래를 곁들여 사람들을 모으는 기술자였다. 아이들에겐 엿을 조금 더 주는 ‘서비스 아저씨’였고, 어른들에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움직이는 라디오’였다. 엿장수는 물건보다 분위기를 팔았고, 사람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선물하는 존재였다. 그렇게 그는 거리의 상인이자, 마을의 분위기 메이커로서 사랑받았다.

4. 엿장수가 사라진 이유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이제 더 이상 골목에서 엿장수의 북소리를 듣기 어렵다. 시대가 변했고, 아이들은 더 이상 엿을 기다리지 않는다. 설탕과 단맛은 넘쳐나고, 판매 방식도 조용하고 정돈된 매장 중심으로 바뀌었다. 엿장수가 사라진 가장 큰 이유는 문화의 변화다. 사람들은 기다리지 않고, 직접 찾고,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거리에서 울리는 북소리는 '소음'이 되었고, 이동 상인은 점점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우리가 엿장수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엿 때문이 아니다. 그는 거리의 리듬이었고, 사람을 웃게 하는 기술자였고, 정서를 나누던 존재였다. 엿이라는 작은 음식 안에는 단맛 이상의 문화가 있었다. 오늘 우리가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해도, 그 기억은 우리 마음 안에 여전히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