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앗간은 마을의 부엌이었다
예전엔 어느 마을에나 하나쯤은 방앗간이 있었다. 방앗간은 단순히 떡을 찌는 곳, 기름을 짜는 기계가 있는 공간이 아니라, 마을 전체의 부엌이자, 사람들의 정을 나누는 장소였다.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다가오면 방앗간은 분주해졌다. 마을 사람들은 며칠 전부터 방앗간 예약을 하고, 쌀과 콩, 깨 같은 곡식을 자루째 들고 나왔다. 기름 짜는 날이면 특히 더 특별했다. 방앗간 주인은 깨나 참깨를 볶고 식힌 뒤, 돌림 기계에 넣어 천천히 눌러 기름을 짜냈다. 기계가 돌아가는 동안 방앗간 안에는 고소한 냄새가 가득 퍼졌고, 동네 어르신들은 그 냄새만 맡아도 “아, 곧 명절이구나” 하고 느꼈다. 기름 냄새가 계절을 알려주던 시절, 방앗간은 그렇게 우리의 일상 한가운데에 있었다.
2. 기름 짜는 기술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방앗간 주인을 ‘기계 돌리는 사람’쯤으로 생각했지만, 사실 방앗간 주인은 철저한 감각과 경험으로 일하는 기술자였다. 기름을 짜기 위해선 깨를 볶는 온도와 시간, 식히는 방식, 기계에 넣는 타이밍까지 모두 섬세한 판단이 필요했다. 조금만 덜 볶거나 과하게 볶으면, 기름이 탁해지거나 탄맛이 나기도 했기 때문에 방앗간 주인은 곡식의 상태, 습도, 날씨까지 고려하며 작업을 진행했다. 실제로 어떤 집은 같은 깨를 들고 가도 기름이 ‘맑게’ 나오고, 어떤 집은 ‘걸쭉하게’ 나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방앗간 주인의 손맛에 달려 있었다. 모든 곡물에는 물성이라는 게 있고, 그걸 아는 사람만이 좋은 기름을 짤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을 어르신들은 단골 방앗간 주인에게만 곡식을 맡겼고, 그만큼 주인의 기술은 신뢰와도 직결되는 요소였다.
3.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마을의 풍경
기름 짜는 날이면 방앗간 근처는 늘 북적였다. 기계가 ‘우우우웅’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그 리듬은 마을의 하루를 알리는 일종의 시계처럼 작동했다. 사람들은 방앗간 앞 평상에 앉아 서로의 곡식이 언제 들어갈지 기다리며 담소를 나눴고, 아이들은 방앗간 앞을 뛰어다니며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주변을 맴돌았다. 특히 주인은 기름을 짠 뒤 남은 ‘지짐이’를 나눠주기도 했는데, 그건 아이들에겐 별미였다. 한겨울에는 방앗간 안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광경이 그 자체로 따뜻했고, 여름에는 기계 돌아가는 열기 속에서도 사람들이 웃으며 줄을 서는 풍경이 자연스러웠다. 방앗간은 단지 일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시간을 나누고 계절을 함께 느끼는 작은 공동체 공간이었다.
4. 방앗간이 사라진 이유, 그리고 남은 것들
지금은 마을 방앗간을 찾기 힘들다. 슈퍼에서 기름을 사는 것이 더 편리하고, 대형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상품이 더 싸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생 기준이 강화되고, 소규모 작업장이 설 자리를 잃으면서 자연스럽게 문을 닫는 방앗간이 늘어났다. 그러나 방앗간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 의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방앗간은 그 시대 사람들이 ‘함께 나누는 삶’을 실천했던 공간이었고, 기름 한 방울에도 정성과 기술이 깃들어 있었다. 요즘엔 다시 ‘전통 방식으로 짠 참기름’, ‘동네 방앗간 기름’ 같은 키워드가 관심을 받는다. 이것은 단지 맛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기억과 정서 때문일지도 모른다. 방앗간 주인의 기술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의 삶을 더 맛있고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손끝의 정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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