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옛 직업

다듬이질하는 아주머니들, 그 소리 속의 정서

info-world8 2025. 4. 19. 19:42

1. 집집마다 울려 퍼지던 다듬이 소리

예전에는 골목길을 걷다 보면, 집집마다 ‘텅텅, 통통’ 울리는 다듬이질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따뜻하고 묘하게 경쾌해서,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다듬이질은 단순히 옷감을 다리는 행위가 아니라, 그날그날의 삶을 정리하는 리듬 있는 노동이었다. 아주머니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빨래를 가지고 와 다듬잇돌 위에 펼쳐놓고, 나무 방망이로 리듬을 맞춰 두드렸다. 그냥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주 보고 박자를 주고받으며, 마치 악기 연주를 하듯 정성스럽게 손질했다. 그 모습은 일이라는 느낌보다는 하나의 풍경이었고, 일상 속의 음악처럼 사람들의 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다듬이질하는 아주머니들, 그 소리 속의 정서

2. 다듬이질은 여성들만의 특별한 기술이었다

다듬이질을 하려면 단순히 힘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방망이를 드는 각도, 두드리는 박자, 손목에 가해지는 힘까지 모두 감각적으로 익혀야 했다. 다듬이질은 잘못하면 옷감이 상하거나 구김이 오히려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하기 위해선 숙련된 손기술이 필요했다. 특히 명절이나 제사처럼 큰 행사를 앞두고는, 집안 어르신들이 “옷감이 곱게 다듬어졌는지”에 예민했기 때문에, 그만큼 정성과 기술이 요구되었다. 다듬이질을 잘하는 아주머니는 동네에서 소문이 날 정도였고, 다른 집에서 다듬어달라고 부탁이 들어오기도 했다. 이처럼 다듬이질은 가정 내 노동이었지만, 그 자체로 여성들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고유한 장인정신이 담긴 작업이었다.

3. 소리로 나누던 대화, 정으로 엮이던 시간

다듬이질은 단순한 집안일이 아니라, 여성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사회적 공간이기도 했다. 아주머니들은 다듬잇돌 앞에 앉아 두드리며, 아이 이야기, 시댁 이야기, 동네 소식까지 자연스럽게 풀어놓았다. 박자에 맞춰 ‘텅통텅통’ 소리가 이어지는 사이, 말과 말 사이에도 리듬이 섞였다. 웃기도 하고, 가끔은 울기도 하며, 서로의 삶을 나누는 공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그 옆에서 그 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잠들기도 했고, 다듬잇돌은 마을 여성들의 정서가 녹아든 ‘따뜻한 공방’ 같은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이웃의 평안을 느꼈고, 때로는 그 소리가 끊기면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걱정하기도 했다. 다듬이 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정과 안부가 담긴 생활의 언어였다.

4. 왜 다듬이질은 사라졌을까?

지금은 더 이상 골목에서 다듬이 소리를 듣기 어렵다. 다리미와 세탁기가 일상을 지배하게 되면서, 사람 손으로 직접 옷을 다듬는 문화는 점점 사라졌다. 또한 합성 섬유의 발달로 인해 옛날처럼 고운 면이나 삼베, 무명 같은 재질의 옷이 줄어들면서, 다듬이질의 필요성도 함께 줄어들었다. 무엇보다도 여성들이 집에만 머무르던 시대가 끝나고, 모두가 바쁘게 각자의 일을 하게 되면서, 함께 앉아 리듬을 나누던 시간 자체가 줄어들었다. 다듬이질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정서적 교류였고,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그런 교류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다듬이 소리는 사라졌지만, 그 소리에 담긴 따뜻한 정과 박자는 형 블로그처럼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 곳에서 오래도록 울려 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