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옛 직업

고물장수, ‘폐지 줍는 어르신’과는 무엇이 달랐나

info-world8 2025. 4. 20. 09:53

1. 고물장수는 마을의 자원 수집가였다

고물장수는 한때 골목길과 장터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존재였다.
그들은 “고물 사요~ 냄비 사요~” 하고 외치며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재사용 가능한 물건을 수거하던 이동 상인이었다. 고장 난 라디오, 찌그러진 양은냄비, 다 쓴 전기선, 깨진 우산 같은 것들을 수레나 리어카에 싣고 다니며 수집했다. 지금은 ‘쓰레기’라고 여겨지는 물건들이었지만, 그 시절엔 고물도 하나의 자원이었고, 쓸모 있는 재료로 여겨졌다. 고물장수는 단순히 버려진 것을 수거한 것이 아니라, 마을 속에서 순환 경제의 흐름을 만든 실질적인 자원 관리자였다. 그들은 고물 수집뿐 아니라, 그것을 분류하고, 필요한 물건을 다른 지역에 전달하는 등 ‘재활용 문화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고물장수, ‘폐지 줍는 어르신’과는 무엇이 달랐나

2. 고물장수는 장사꾼이자 정보통이었다

고물장수는 혼자서 마을을 돌아다니는 이동형 장사꾼이었지만, 단순한 수거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들과 말을 섞으며 동네 소식을 가장 빠르게 파악하던 소통자였고, 때론 “저 집 할머니 돌아가셨다더라”, “다음 주에 큰 장이 선다더라”는 이야기를 전하는 작은 미디어이기도 했다. 고물장수는 마을 아이들에겐 고장 난 장난감을 고쳐주는 아저씨였고, 어르신들에겐 못 쓰는 물건을 가져가 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특히, **고물과 맞바꾸는 ‘보상형 거래’**도 많았다. 집에서 고물을 내놓으면, 고물장수는 세숫비누 한 장이나 연필 한 자루를 건네주곤 했다.
이런 방식은 장사와 교환, 정서적 연결이 함께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지금의 단순한 ‘재활용’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3. ‘폐지 줍는 어르신’은 생존을 위한 노동이다

반면 요즘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고물장수와는 결이 다르다.
고물장수는 직업이었고, 생계 유지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반면, **오늘날 폐지 줍는 어르신 대부분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생계형 노동자’**다.
수레를 끌며 골목을 돌고, 쓰레기통을 뒤져 종이와 플라스틱을 모으는 일은
노후를 여유롭게 보내야 할 어르신들이 하루 10시간 이상을 걸어다니며 하는 고된 노동이다.
게다가 고물 수집 단가도 턱없이 낮아, 한 달을 쉬지 않고 모아도 겨우 몇 만 원 남짓이다.
이들은 누군가에게 ‘폐지 줍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생존자들이다.
이 점에서, 고물장수가 ‘장사’였다면, 폐지 줍는 일은 노동 그 자체이자 구조적 문제의 반영이다.

4. 고물장수는 사라졌고, 우리는 무엇을 잃었을까

고물장수는 점점 사라졌다.
집에서 안 쓰는 물건을 내놓기보다 대형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 버리는 시대가 되었고,
물건의 수명도 짧아져 고쳐 쓰는 문화는 희미해졌다.
고물장수는 단순히 사라진 상인이 아니라, 물건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만들어내던 존재였다.
그들이 사라지며, 우리는 물건을 쉽게 버리고, 관계를 덜 맺게 되었다.
반면, 폐지를 줍는 어르신의 수는 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되묻고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버려지는 것에 대한 인식, 노동에 대한 존중, 그리고 사라진 것의 가치에 대한 복원.
형 블로그 같은 공간에서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일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사람의 삶'을 복원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