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옛 직업

시계 고치는 사람들, ‘시계장수’의 시대

info-world8 2025. 4. 21. 08:18

1. 시계를 고친다는 건 시간을 되돌리는 일이었다

시계가 멈춘다는 건 단순히 기계가 멈췄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건 어떤 사람의 하루가 멈추고, 리듬이 끊겼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시계 수리공, 또는 ‘시계장수’는
단순히 시계를 고치는 기술자가 아니라, 사람의 시간을 되돌려주는 장인으로 여겨졌다.
예전에는 집마다 하나쯤 있는 벽시계나 알람시계,
그리고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차고 다니던 금속 손목시계가
오랜 시간과 추억을 함께 간직한 물건이었기 때문에
그 시계가 멈췄을 때는 그냥 버리지 않고 반드시 고치러 갔다.
그렇게 사람들은 작은 시계방을 찾아
시계를 고치며, 동시에 자신의 시간도 다시 정비했던 것이다.

시계 고치는 사람들, ‘시계장수’의 시대

2. 시계장수는 오차 없는 손끝을 가진 기술자였다

시계 수리의 세계는 상상보다 훨씬 섬세하고 정밀했다.
특히 기계식 시계는 수백 개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태엽, 기어, 스프링, 밸런스 휠 등 어느 하나라도 어긋나면
정확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시계장수는 루페(확대경)를 한쪽 눈에 끼우고
머리카락보다 가는 부품을 핀셋으로 잡아 맞추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했다.
가끔은 먼지를 털어내고, 오일을 아주 미세하게 떨어뜨리는 작업 하나에
한 시간을 쓰기도 했다.
그들은 단순히 부품을 교체하는 게 아니라,
기계의 리듬을 되살리는 손끝의 음악가였고,
고장 난 시계를 다시 ‘짹짹짹’ 움직이게 했을 때
손님보다 먼저 미소를 짓는 사람이었다.

3. 시계방은 단골이 모이는 동네의 시간 거점이었다

동네마다 한두 군데쯤은 꼭 있었던 시계방.
그곳은 시계를 고치러 가는 곳이기도 했지만,
동네 어르신들이 잠시 앉아 쉬어가는 문화 공간이기도 했다.
어떤 날은 고장 난 시계를 들고,
어떤 날은 시곗줄을 새로 달고,
또 어떤 날은 그냥 “이거 몇 년 됐을까요?” 하며
시계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러 가는 곳이기도 했다.
시계장수는 그런 손님 하나하나의 기억을 함께 꿰고 있었다.
“이건 따님이 대학 들어갈 때 선물하신 거죠?”
“작년에 분해청소했으니까, 이번엔 오일만 갈면 돼요.”
이런 대화는 기술자가 아니라, 기억을 공유하는 친구의 말투였다.
시계방은 단순한 수리점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간을 함께 보관해주는 ‘작은 시간 보관소’ 같은 공간이었다.

4. 시계장수가 사라지고, 함께 멈춰버린 것들

이제는 시계를 고치기보다 새로 사는 시대다.
디지털 시계와 스마트워치가 보편화되면서
정밀 기계식 시계는 일부 수집가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렸고,
시계방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시계장수는 더 이상 골목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들이 고치던 건 단순한 시계가 아니라
사람의 리듬, 하루의 흐름, 그리고 시간에 대한 정서였다.
한때는 아버지의 퇴근 시간을 알려주던 알람시계,
졸업 선물로 받았던 첫 손목시계,
모두가 멈춘 뒤에도 누군가의 손끝에서 다시 숨을 쉬던 시절이 있었다.
형 블로그에서 이 이야기를 복원하는 건,
단지 옛 직업을 추억하는 게 아니라
시간에 대한 감각과, 사람의 손으로 다시 움직이던 시절의 온기를 전하는 일이다.
시계장수는 기계보다 사람을 먼저 보는 기술자였고,
그들이 사라진 오늘은 어쩌면,
시간의 흐름도 조금은 더 차가워진 날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