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산이 귀하던 시절, 수리공은 필수였다
지금은 편의점에서 몇 천 원이면 새 우산을 살 수 있지만,
과거에는 우산 한 자루가 결코 싼 물건이 아니었다.
우산은 고급품에 가까웠고, 비가 올 때마다 잘 접어 다니며
소중히 다루는 물건이었다.
한 번 찢어진 천이나 부러진 살 때문에 버리기보다는
수리해서 오래 쓰는 문화가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골목 어귀나 시장 한 켠에는 우산 수리공이 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산 수리공은 단순히 고장난 우산을 고치는 기술자가 아니었다.
그는 비 오는 날 갑자기 우산이 고장 나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에게
즉석에서 해결책을 주던 동네의 히어로였다.
2. 우산 수리공의 손끝엔 기술과 감각이 있었다
우산을 수리한다는 건 단순히 ‘고친다’는 의미 이상이었다.
우산 수리공은 천이 찢어진 부분을 교체하거나 살(금속 골조)을 바꾸고,
고리와 손잡이까지 손을 봐야 하는 복합적인 기술자였다.
특히 우산살은 하나만 어긋나도 접히지 않거나, 펴지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 조정과 강도 조절이 필요했다.
우산 수리공은 이런 미세한 조정을 오직 손의 감각과 오랜 경험으로 해결했다.
접히는 각도, 바람에 흔들릴 때의 균형감, 손잡이의 무게 중심까지
그들의 손길은 단순한 ‘수리’를 넘어 우산을 새것처럼 재탄생시키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 우산을 사기보다는
단골 수리공에게 수리를 맡기며, 오랫동안 같은 우산을 썼다.
3. 장마철이면 바빠지는 그의 하루
장마철이 다가오면 우산 수리공은 진짜 바빠졌다.
아침부터 비에 젖은 손님들이 고장 난 우산을 들고 찾아왔고,
수리공은 작은 플라스틱 의자 위에 앉아 연신 손을 놀렸다.
빠르게 천을 꿰매고, 고장 난 스프링을 교체하고,
때론 임시방편으로 철사나 비닐 테이프를 활용해 급히 복구해주기도 했다.
고객 중에는 학생, 회사원, 어르신까지 다양했는데,
비를 맞고 들어온 사람들에게 “이거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됩니다” 하고 말하던 수리공의 목소리는
비 오는 날의 가장 따뜻한 말이었다.
그의 곁에는 고장난 우산들이 쌓이고,
그 우산들이 하나둘 복원될 때마다
사람들의 불편함도, 짜증도 함께 사라졌다.
수리공은 그렇게, 비 오는 날의 진짜 해결사가 되었다.
4. 우산 수리공이 사라지고, 함께 잊힌 것들
오늘날엔 우산 수리공을 찾기 힘들다.
우산이 저렴해지고, 대체재가 넘쳐나면서 고쳐 쓰는 문화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길거리의 우산 수리 좌판도 거의 자취를 감췄고,
사람들은 조금만 망가져도 바로 새 우산을 산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산 수리공이 보여주던 ‘수리’라는 문화의 가치다.
단순히 고쳐 쓴다는 것이 아니라,
물건에 대한 애정, 불편함을 해결해주는 사람의 역할,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연결이 존재하던 문화였다.
형 블로그에서 이 이야기를 기록하는 건,
그 수리공을 다시 부르자는 게 아니라
그 손끝에 담긴 기술과 마음, 그리고 함께하던 시절의 정서를 기억하자는 의미다.
비 오는 날이면 떠오르던 그 사람,
우산 수리공은 정말로 우리 일상 속의 히어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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