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옛 직업

거문고 만드는 장인, 소리의 조각가

info-world8 2025. 4. 24. 09:48

1. 거문고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시간을 담은 울림이었다

거문고는 단순한 현악기가 아니다.
그 안에는 조선의 시간, 사람의 정서, 자연의 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길고 낮은 울림은 느린 걸음의 정서를 닮았고,
묵직한 음색은 사유하는 삶의 깊이를 표현했다.
하지만 그 거문고를 만드는 장인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악기를 연주하는 이는 무대에 서지만,
그 무대를 가능하게 만든 사람은 늘 무대 뒤에서 조용히 소리를 조율한다.

거문고 장인은 바로 그런 존재였다.
그는 손으로 나무를 다듬고,
귀로 소리를 듣고,
가슴으로 음색을 느끼며
형태가 아닌 '소리'를 조각하는 사람이었다.

거문고 만드는 장인, 소리의 조각가

2. 거문고 제작에는 나무의 숨결과 장인의 직관이 깃든다

거문고를 만드는 데에는 수개월이 걸린다.
우선 나무를 고르는 일부터 쉽지 않다.
통울림이 좋아야 하기에 밤나무, 오동나무, 다듬은 소나무 등
건조한 숲에서 오래 자란 나무만을 선별한다.

그 나무를 건조시키고, 온도와 습도에 따라 안정을 맞춘 뒤
일일이 결을 따라 깎아내야 한다.
거문고는 몸통, 덮개, 다리, 안족, 줄고리 등
약 60여 개의 부품으로 구성되며,
이 모든 것을 손으로 깎고 다듬고 접합하며 소리를 만든다.
기계로 깎으면 형태는 같을 수 있어도
소리의 깊이, 음의 떨림, 울림의 여운은 살아나지 않는다.
장인은 눈이 아니라 귀로 완성도를 판단하고,
손이 아니라 마음으로 악기의 영혼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거문고는 단지 ‘물건’이 아니라,
시간과 감각이 축적된 한 자루의 예술품이다.

3. 장인은 연주자의 마음을 예측하며 악기를 만든다

거문고 장인은 혼자만의 기준으로 악기를 만들지 않는다.
그는 연주자의 손길을 미리 상상하고,
어떤 음을 누르고 어떤 곡을 연주할지를 떠올리며
사용자에게 맞는 ‘울림의 방향’을 설계한다.
소리가 너무 얇지 않게,
너무 묵직하지 않게,
사람의 마음을 오래 머무르게 할 정도의 울림을 조율한다.
장인의 손끝은 오로지 '사람'을 향한다.
그는 눈으로 연주자를 보지 않아도,
귀로 그들의 소망을 듣고 손으로 구현한다.
가끔은 연주자가 다시 찾아와
“이 거문고는 정말 내 손에 잘 맞아요”라고 말하면
장인은 말없이 웃는다.
그건 ‘판매’가 아니라,
자신이 만든 소리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4. 거문고 장인이 사라지며, 소리의 깊이도 점점 옅어지고 있다

지금은 거문고를 만드는 장인을 보기 힘들다.
몇몇 문화재 장인이나 국가무형문화재로 남아 있지만
전통 악기의 수요는 줄었고,
젊은 세대에게 전수도 어려워진 현실
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악기 하나를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그 악기를 통해 사람의 마음과 시간,
그리고 자연의 울림을 이어주던 ‘손끝의 철학’이다.

형 블로그에서 이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건
과거의 장인 기술을 단순히 소개하는 게 아니라,
사라진 감각, 잊혀진 공기, 그리고 묵직한 소리의 미학을 복원하는 일이다.
거문고는 지금도 울릴 수 있다.
그 소리를 되살리는 건,
그걸 만들던 장인의 손을 다시 기억해주는 일에서 시작된다.